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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 이식’ 하모니를 만드는 지휘자
혈관이식외과 김지일 교수
지난 5월 7일, 긴장감이 의정부을지대학교병원을 가득 메웠다. 공여자를 모신 수술실의 분위기는 숙연했다. 약 4시간 뒤 공여자의 한 개의 신장과 간, 폐는 각기 다른 차량에 실려 서울과 부산을 향했다. 수술실에 남겨진 다른 하나의 신장은 이 안에서 곧바로 다른 생명에게 이식됐다.
장기이식수술은 1분 1초도 예측할 수 없는 드라마다. 의정부을지대학교병원에서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 같은 현장에서 생과 사를 동시에 마주하고 있는 혈관이식외과 김지일 교수를 만났다.
경기북부의 ‘희망’이 되기 위한 동행
지난 5월, 의정부을지대학교병원에서 첫 번째 신장이식이 성공적으로 이뤄졌다. 신장이식팀(혈관이식외과 김지일, 신창식 교수, 신장내과 이성우 교수)의 집도로 폐, 간, 신장 등 공여 장기 적출을 시작으로 신장이식까지 성공적으로 진행됐다. 신장이식 수혜자는 말기신장병 환자 이 씨로, 약 2주간 양압병실에서 경과를 지켜본 뒤 건강한 모습으로 퇴원했다.
뇌사자 관리업무 협약기관으로 지정받은 의료기관은 장기이식의 전 과정을 신속하게 진행할 수 있다. 특히 뇌사자의 신장 중 하나는 해당 의료기관에서 이식수술을 진행할 수 있는 우선권을 부여받는다. 덕분에 환자 이 씨는 타병원에서 평균 5~6년 대기해야했던 이식수술을 몇 개월만에 받을 수 있었던 것.
환자 이씨는 “을지대병원 덕분에 새로운 삶을 얻었다”며 “이곳에서 김지일 교수를 만날 수 있던 것은 천운”이라고 감사함을 전했다.
김 교수는 국내 장기이식 수술 계보의 중심에 있던 ‘명의’로 익히 알려져 있다. 그는 신췌장 동시이식, 심장-신장 동시이식, 혈액형이 다른 장기이식, 소장을 포함한 다장기이식 등 대한민국 장기이식 역사로 기록될 현장에 늘 함께했다.
김 교수는 “신장은 1개만 있어도 생명에는 직접적인 지장이 없다보니 다른 장기에 비해 더욱 이식 대상자로 선정되기 까다롭고 어렵다”고 설명했다. 이어 “의정부을지대학교병원에서 일하게된 이유가 여기에 있다”며 “의료 취약지에서는 더욱 장기이식 혜택을 받기 어렵기 때문에, 의정부을지대학교병원이 경기북부에 새로운 희망이 될 것이라는 기대감에 동행을 결정했다”고 덧붙였다.
첫 신장이식 환자 퇴원 기념사진(왼쪽부터 혈관이식외과 김지일 교수, 신창식 교수)
‘하나’로는 불가능한 영역, 장기이식
지난해 방영된 의학 드라마에서 장기이식 관련 에피소드가 나온 뒤 장기기증에 대한 관심이 크게 증가됐다는 보도가 있었다. 그러나 지난 4월 통계자료에 따르면 국내에서 장기이식을 기다리다 숨지는 환자가 매년 늘어나, 하루 7명꼴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김 교수는 장기이식을 ‘오케스트라’로 비유했다.
“다른 수술과 가장 큰 차이점은 ‘하나’로는 불가능하다는 점입니다. 공여자가 있어야 한다는 건 당연하구요. 뇌사자 신장이식의 경우 수혜자의 전반적인 상태를 파악하기 위해 신장내과, 심장내과, 소화기내과, 비뇨기의학과, 감염내과 등의 전체적인 파악이 필요하고, 장기공여자의 상태를 파악하기 위해 영상의학과, 뇌사 판정을 위해서는 신경과와 신경외과, 뇌사관리를 위해서는 신장내과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수술 현장에서는 마취통증의학과가 있어 든든하구요.”
환자를 위한 ‘최선의 선택’
가장 가까운 가족과도 손발을 맞추는 일은 쉽지않은 일.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 교수는 긴장감 넘치는 수술실에서 부드러운 카리스마로 현장을 지휘한다. 외래 진료실뿐만 아니라 동료 직원들에게도 ‘친절직원’으로 손꼽힌다. 한번은 지방에서 올라온 환자와 보호자를 위해 매일 직접 전화로 환자의 상태를 쉽게 설명해드려 감사편지가 병원으로 전해졌다.
“전문진료분야가 ‘혈관이식외과’인 것처럼 이식뿐만 아니라 혈관과 관련된 대부분의 질환도 진료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보니 혈관질환을 가지고 있거나, 신장이식이 필요한 환자분은 대부분 고령이시거나 다른 동반 질환을 가지고 계신 분들이 많기 때문에 충분한 상의와 설명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또, 이식수술에 대한 심리적 부담이 크실테니, 환자와 가족분들의 입장에서 한번 더 생각하고, 최선을 다하게 되는 것 같아요. 진료의 가장 큰 목적은 결국 ‘환자를 위하는 것’이니까요.”
환자를 위해 끊임없이 임상연구를 진행하고 있는 김 교수는 국제 학회에서 인정받고있는 연구자이기도 하다. 최근 화학합성물질로 만들어진 인조혈관을 대체할 수 있는 생체 혈관을 만들어 동맥수술 후 개존율을 높이는 방법을 찾고 있다.
독주보다 어렵지만 아름다운 ‘하모니’를 만들기 위해 환자와 보호자 등 작은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김 교수의 따뜻함이 있어 그의 수술실은 늘 온기가 가득하다.